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문단 편집) == 박종철의 죽음 이후 == >관계기관대책회의나 그 구성원들이 사건에 위법하게 개입한 점이 확인되는 바, 국가는 정권의 필요에 따라 국가형벌권 행사의 법적 장치를 넘어 정치적으로 검찰의 수사권을 침해한 점과 검찰이 외압에 굴복하여 헌법과 법률로 부여된 수사권을 적절하게 행사하지 못한 점에 대하여 유족에게 사과할 필요가 있다. 검찰 또한 헌법에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었음에도 권력층의 압력에 굴복하여 진실왜곡을 바로잡지 못한 점에 대하여 사과할 필요가 있다. >---- >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 [[http://www.pasthistory.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006&nttId=41250|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관계기관 대책회의 은폐,조작 의혹사건]] 민주화 이후 1989년에 박종철 군의 유가족들은 국가와 고문치사 사건 관련 경찰관들을 상대로 1억 2천만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그 결과 1995년 11월에 대법원은 "국가와 고문경찰관 5명은 연대해서 1억 4천 7백만 원을, 그리고 경찰수뇌 4명은 직무유기 및 범인 도피의 책임을 지고 2,4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박 군의 유가족들은 이자를 포함해 총 2억 4천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수령했다. 안상수는 이 사건의 담당 검사였고 [[문민정부]] 하에서 신한국당(이후 한나라당)으로 자신이 '''주동적'''으로 사건 은폐를 막았다고 주장했지만 [[조국(인물)|조국]]은 "안상수가 아닌 그의 상관인 최환 부장검사가 박종철 시신의 부검을 지시하여 이 사건의 은폐를 막았다"고 반박했다. [youtube(rhF969Aotco)] 이 사건을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이 일으켰다고 아는 사람도 가끔 있는데 이 사건만은 정말 이근안과 무관하다. 당시 이근안은 경기경찰청 대공분실장으로 [[경기남부지방경찰청|경기도경찰국]] 소속이었고 이 사건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건축가 [[김수근]]이 만든 그 건물 맞다.]에서 일어났다. 1999년, 이 사건은 전현직 언론인 12명으로 심사위원을 구성해 20세기 한국을 뒤흔든 특종 중 하나로 선정됐다.[[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2|#]] 2001년, 박종철이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지정됐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4048037#home|#]] 2009년, 정부 차원의 조직적 은폐 시도가 있었음이 공식 확인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87년 사건 발생 당시 정부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 조작하기 위해 안기부장·내무부 장관·법무부 장관·검찰총장·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구성된 ‘관계기관대책회의’를 최소 2회 이상 열었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https://m.khan.co.kr/national/incident/article/200906071759355#c2b|#]] 2012년, 한겨레에서 25주년을 기념하여 그때 그 사람들의 행적을 정리한 기사가 나온 바 있다. 위에 정리된 내용과 거의 유사하지만 참고하자.[[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67&newsid=20120114023906815|#]] 더불어 이 사건을 밝히는 데 일조한 검사 최환과 부검의 황적준이 30년 만에 만났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8&aid=0002349763&sid1=001|#]] 2016년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가 열리고 [[박근혜]]가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라는 식으로 __책상을__ 쿵쿵 내려치는 반응을 보이자 이 사건이 재조명되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6022411557665085|#]] 2018년 1월 9일, [[조현배]] 부산경찰청장이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가 입원한 부산의 한 요양병원을 찾아 경찰의 고문 행위에 대해 사죄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2271826|#]] 2018년 3월 20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요양원에 있던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를 만나 31년 만에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현직 검찰총장이 과거사에 대해 직접 사과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402977|#]] 2018년 3월 26일,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이 사건이 초등학교 6학년 [[사회(교과)|사회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 결정됐다.[* '[[이한열]] 열사 사망사건'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촛불집회]]도 실렸다.] "1987년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불법적으로 경찰에 끌려갔던 대학생 박종철이 고문을 받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내용이다.[*교과서목록 [[파일:20220116_195339.jpg|width=500]]][[https://news.mt.co.kr/mtview.php?no=2018032615538239541|#]] 2018년 3월 30일,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이 사건이 국제사회에 부각이 안 되도록 외교 활동을 벌인 사실이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2490981|#]] 2018년 10월 검찰이 사건을 축소한 것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2&sid2=249&oid=016&aid=0001450689|#]] 2020년 6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사망한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 현장을 찾아 헌화했다. 현직 대통령이 권위주의 시대 인권 탄압의 상징인 이곳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https://www.hankyung.com/politics/article/2020061025207|#]] 2020년 10월,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 등 민주화 유공자 12명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정부가 6월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민주화 유공자에게 훈장을 수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00611/101458374/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